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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자료실
작성자 : 이상원     2015-06-12 11:31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생명윤리의 문제 (2005. 4. 1.)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생명윤리의 문제




이상원(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특별기획 : UN 인간복제 금지선언과 생명윤리

「신앙세계」, 통권 441호(2005년 4월호), 월간신앙세계사, 2005.4.1, 24-27면 게재.

발표일 : 2005. 04. 01.

 


한국사회가 생명윤리의식이 극히 빈약한 나라라는 사실은 그동안 여러 방면에서 입증되어 온 바이지만, 최근 UN이 인간복제금지선언을 했을 때 보여준 한국정부의 태도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한국정부는 UN선언문 채택여부를 묻는 투표를 실시했을 때 찬성 84표, 반대 34표, 기원 37표로 나타난 투표결과에서 34표밖에 안되는 반대에 표를 던지고 당당히 선언문채택반대의견을 주도적으로 개진하는 어이없는 비도덕적인 형태를 보여 주었다. 한국정부가 UN인간복제금지선언문에 반대한 것은 이 선언문이 인간복제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고 있는 배아복제까지 금지시키는 조항을 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이 더 중요한 가치인가, 아니면 경제적 이익과 국가경쟁력이라는 가치가 더 중요한 가치인가 라는 갈림길에서 한국정부는 후자를 택했다.


한국사회가 생명윤리의식이 빈약하다고 했을 때, 생명윤리의식이란 말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먼저 생명윤리라는 용어부터 검토해 보자. 생명이라는 말은 생명을 다루는 인간의 행위를 뜻한다. 윤리라는 말은 어떤 행동이 옳은 행동인가, 그릇된 행동인가를 비판적으로 따져보는 작업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생명윤리란 생명을 다루는 인간의 행동이 과연 올바르게 행해지고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따지는 작업이다. 따라서 생명윤리의식이란 생명을 다룰 때 항상 옳은 방향으로 바르게 생명이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항상 의식하면서 인간의 생명을 다루고, 또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행위를 예의 주시해 보는 태도를 뜻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생명윤리를 본다는 말은 기독교에서 제시하는 인간관과 도덕적 규범에 근거하여 생명을 다루는 인간의 행동들의 옳고 그름 여부를 비판적으로 따져본다는 것을 뜻한다. 풍부하고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 기독교적 인간관 중에서 생명윤리와 관련하여 고려해 보아야 할 내용은 바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인간관이다. 하나님의 형상에 관련된 여러 곳의 성경본문들 가운데 주목해야 할 중요한 본문은 창세기 1장 26절과 27절 그리고 창세기 9장 6절이다. 먼저 창세기 1장 26절과 27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르시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 본문의 요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인데, 이 말은 “사람=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뜻이다. 사람 가운데 있는 어떤 특정한 한 부분이나 요소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전인으로서의 사람이 곧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뜻이다. 영혼만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몸까지도 하나님의 형상이다.


창세기 1장 26,27절의 말씀이 타락 이전의 상태를 말한 것이라면, 이 말씀은 타락 이후의 인간에게도 적용되는가? 이 질문과 관련하여 중요한 본문은 창세기 9장6절 말씀이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세 가지 정보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첫째로, 이 본문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 주어진 말씀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도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명명하신다. 여기에는 어떤 제한 조건이 없다. 모든 인간은 다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점에 있어서 차별은 없다. 이 말을 현대 의학적 차원에 적용한다면 건강한 성인이든 아니면, 혼수상태의 환자, 치매에 걸린 노인, 정신질환자, 뱃속에 있는 태안, 시험관 안에 있는 수정란이나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다.


둘째로, 이 본문은 인간의 정신뿐만 아니라 신체도 하나님의 형상임을 분명히 못 박았다. 사람의 피를 흘리는 자 곧 사람을 죽이는 자는 사형당해야 마땅한데,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이 본문에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사람의 몸을 죽이는 것을 뜻한다. 곧 사람의 몸도 하나님의 형상이다. 창세기 1장 26,27절에 전인이 곧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 시사되었는데 창세기 9장 6절에서 보다 명확해진다. 인간의 신체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은 그동안 생물학적인 인체연구를 통하여 인체가 얼마나 신비롭고도 정교한 구조로 되어 있는가가 드러남으로써 뒷받침되어 왔는데, 최근의 유전학연구를 통해서는 한층 더 선명해졌다. 바늘 끝보다도 더 작은 세포 안에서 전개되는 DNA를 중심으로 한 극히 정교하고 신비로운 소우주의 세계는 무한한 지혜의 소유자인 하나님의 작품으로 해석하지 않고는 해석될 길이 없다. 박형룡 박사가 지적한 것처럼 “몸은 영혼의 자기표현의 기구”이며, 칼빈이 말한 것처럼 육체의 부분에도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장식되지 않은 곳이 없으며, 바빙크가 말한 것처럼 육체도 하나님의 경이로운 걸작품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에 속해 있다.


셋째로, 인간의 몸까지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인간관은 이 관점에 부합하는 윤리적 실천을 요청한다. 이 실천의 요구는 창세기 9장 6절에 이미 나타나 있다. 본문에는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사형의 형벌을 받도록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사람의 몸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인간의 몸을 파괴하는 행위는 곧 하나님 자신에게 도전하는 행위라는 뜻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서 어떤 미술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작품을 화랑에 전시해 놓았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관객 하나가 지나가다가 이 작품을 칼로 찢어서 팽개쳐 버리는 현장에 그 작품을 제작한 미술가가 서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미술가는 관객의 행위를 자신에 대한 심각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몸을 죽이는 행동은 하나님 자신을 공격하는 독신적 행위가 된다.


창세기 9장 6절의 말씀에 근거하여 모세의 율법 가운데 보편법에 해당하는 십계명 중에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보편적 도덕법으로 규정되었다. 보편법으로서의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은 생명을 다루는 인간의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규범으로서 작용한다. 생명을 다루는 인간의 행동의 옳고 그름은 그 행동이 인간의 생명을 부당하게 찾아오는 파괴와 죽음으로부터 보호하고 지키는 일을 충실하게 수행했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인간 자신의 유한성과 한계 대문에 인간은 인간의 생명을 궁극적으로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없다. 인간의 신체가 천수를 다 누리고 생애의 종언을 고하는 것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 인간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불치의 질병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찾아오는 불의의 사고들도 있다. 이런 모든 죽음의 현실로부터 인간 스스로가 인간을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생명을 다루는 자들은 불의의 질병 때문에 인간의 신체가 죽음을 당하거나 파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인간은 인간의 생명을 연구하고 다루는 과정에서 생명을 종결시키는 다양한 방법과 길들을 알게 된다. 이때 생명을 다루는 과정에서 가치의 충돌이 나타날 수 있다. 가치의 충돌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가치들과 기독교적 인간관과 윤리규범이 제시하는 가치들이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지배하는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시대를 지배하는 이념은 그 이념을 추종할 경우에 뒤따르게 될 막대한 이익을 제시하면서 따라오도록 유혹하는 동시에 그 이념을 추종하지 않을 경우에 많은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며 사회의 다수로부터 소외된다는 사실을 은근히 보여줌으로써 위협한다. 이 유혹과 위협을 이겨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생명윤리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가치의 충돌은 주로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사람의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인가, 아니면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인가 하는 질문으로 나타난다. 쾌락과 즐거움과 행복을 유일한 존재이유요, 이것들이 없이 다만 가치가 없는 삶이라는 쾌락주의(hedonism)가 강해지면, 죽음을 이용해서라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안락사나 자살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러나 기독교적 인간관과 윤리규범은 인간의 생명이라는 가치와 고통의 해방이라는 가치가 충돌을 일으킬 때 인간의 생명에 더 큰 비중을 둔다. 따라서 죽음을 이용하여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시도는 반기독교적인 행위로 비판된다.


또 하나의 가치의 충돌은 현대인을 지배하고 있는 공리주의사상에 의하여 야기된다. 공리주의는 가능한 한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는 행위를 옳은 행위로 판단한다. 공리주의적 사고가 극단화되면 죽음이라는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혜택을 추구하고자 하는 태도가 나타난다. 예컨대 사생아를 낳음으로서 임산부의 일생에 찾아올 고난을 피하기 위하여 아이를 낙태시킨다든지, 신생아를 보자기에 사서 쓰레기통 속에 버린다든지, 인간으로 보아야 할 많은 수정란을 파괴시키는 살인행위를 무릅쓰고라도 시험관아기를 가지려고 시도한다든지, 살아있는 사람들의 난치병치료를 목적으로 하여 살아있는 배아를 할구분할하는 살인행위를 자행하면서까지 배아복제를 시도하려는 생명공학자들의 행태가 등장하게 된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들이 환자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행하는 많은 노력들은 물론 정당한 것이며, 생명공학자들이 유전자연구를 통하여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고 성체줄기세포 추출방식 등을 이용하여 난치병치료를 위한 연구를 추진하며, 때로는 병든 유전자를 건강한 유전자로 교체함으로써 질병의 근원적인 치료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지만 이 모든 시도들에는 넘어서는 안 될 경계선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몸을 죽이는 살인행위를 방편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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