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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자료실
작성자 : 김미숙     2016-01-07 12:18
[협회 제7회 생명윤리 활동 수기 수상작- 특별상]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 우리의 삶" (2012. 10.)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 우리의 삶

 

 


김미숙

(피아노학원장, 사랑의교회)

2012. 10.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로서,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으며, 여러 사람으로 이뤄진 조직에서 다른 사람들 즉 사회, 공동체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며 그로써 행복감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을 닮은 인격으로 지으시고 서로 사랑하며 아름다운 관계를 갖게 하셨지만, 마귀는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상처를 곱씹으며 서로의 관계를 이간하고 갈등과 반목하며 상처받고 아파하며 살아가게 한다. 반복되며 분주한 현대인들의 일상가운데에서도 우리는 우리 주변에 상한 마음으로 고통받고 있는 영혼들에게 손을 내밀어 상처의 쓴 뿌리가 되는 이기심과 나태함, 정서적인 굶주림, 불안, 분노, 열등감, 우울감의 치유를 받아야 할 필요성을 제고하며 지나온 나의 삶의 과정을 열어본다. 마음속 상처는 꺼내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고, 내 몸 구석구석 세포막까지 달라붙어있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는 치유되지 않으면 분노와 죄로 자랄 소지가 있고 그 화는 상처를 준 사람이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나타나 요즘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묻지마 범죄’나 다양한 범죄 양상으로 드러날 수 있기에 그것을 예방하고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개개인의 삶을 주관하고 계심을 나의 삶을 열어 시대를 구원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이 글을 쓴다. 오늘 나누고자 하는 나의 삶의 편린들도 고통받고 있는 영혼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나는 모 대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 사감이 2001년 3월 어느 날 나를 불러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말을 건넸다. 이미 1년 동안 일을 함께 해 온 터였고, 2년째 일을 맞추는 사람이어서 그분의 성격과 일처리 방법 등을 숙지하고 있는 차라, 그분의 눈물이 상당히 의아했다. 도통 눈물을 흘리지 않으며, 일처리를 깔끔히 하고 조직에 대해 충성하며, 상관에게 몰래 동료의 일들을 고자질(잘못된 것을 위에 얘기)하는 유형이었다. 가끔 시간이 지나면 잘 해결될 일들도, 미리 선수쳐서 동료간의 관계를 상당히 어색하고 억압적인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하였기 때문에 늘 나는 그 분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미워하면 안 되는데, 꼭 저렇게 해야만 하는가라는 그 심정이 일을 하면서 내 내면에 쌓여갔고, 그분의 행동을 체크해가며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앞에서 그분의 눈물이 이상했다. 나한테 왠 약함을 내보일까?라는 의심스런 눈초리를 안고 그분의 사정을 들어보니, 산부인과 검진을 해 보니, 자궁에 혹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몸이 아프기 때문에 올 한해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넸다. 본인이 아프면, 기숙사일도 잘 못할 수 있으니,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부탁을 한 것이다. 이미 한 아이의 출산을 한 경험이 있는 분이셔서, 처녀인 나를 붙들고 자궁에 물혹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놓기가 쉬웠는지는 몰랐지만, 나는 그때 적잖이 놀랬다. 몸속 아기가 살 수 있는 자궁에, 혹이 들어갔다고??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몸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을 했고, 그날 모임은 그것으로 얘기가 끝났다. 몇 달의 시간은 흘렀고, 여름방학즈음이 되자 나에게 부탁했던 그 여 사감의 배가 커졌다. 뱃속에 있는 물혹이 저렇게 커졌나 싶어서 얼마나 걱정이 되었던지, 함께 기숙사를 직장삼아 일하시는 식당 주방장님께 조심스레 말씀을 건넸다. “저 여 사감님, 자궁에 물혹이 있다고 그랬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저렇게 커졌나봐요. 어떻게 하죠? 수술하면 낫지 않을까요? 걱정스럽네요.”라고...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주방장님은 나를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바라보며 “저건, 임신이쥬(충청도 사투리를 쓰셨다)~ 저게 무슨 물혹이예요? 저렇게 혹이 몸속에서 크면 사람 죽지유~”라고 말하면서 웃으셨다. 마음이 철렁했다. 그때만해도, 주변에 임신한 여성의 몸을 본 적이 없기에 몰랐을 뿐더러, 분명 내게 자궁에 혹이 있어서 몸이 힘드니 1년간 많이 도와달라는 말을 했는데, 임신을 했을지는 생각도 못했다. 그도그럴 것이 워낙 몸이 날씬해서 배가 불러오는 것을 모르다가, 임신 막달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으니 그 사감의 말을 사실로 믿은 나도 참 한심하다는 자책까지 들었다. 그 해 9월에 뱃속에 10달동안 있었던 아기는 정상적으로 출산하였고, 그 사감님은 출산 이후로 2학기엔 학교에 출근하지 않고 재택근무형식으로 일을 했다. 그러나 규율을 잡아 운영하는 기숙사체제에 큰 혼란이 야기되었다. 기숙사는 그야말로, 집 떠나와 유학의 길에 오른 학생들에게 자취나 하숙과는 달리, 규율을 적용하여 엄격히 운영하는데, 2학기에 갑자기 사감 공석이 되어 자리를 비게 되자, 기숙사 규율이 엉망이 되었다. 외출, 외박에 대한 기준도 해이해졌고, 미리 말을 하고 허가를 받고 했던 허가제에서 외박을 하고 난 뒤에 신고제로 바뀌게 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재택근무로 집에 들어가서 일을 하면서 그 나머지 잡무들은 생각지도 않게 여러 사감들에게 분배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나를 속이고 기만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고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같은 여자로서 임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충분히 도와줄 수 있었는데, 처음에 자궁에 물혹이라는 사유로 사람을 걱정케 만들더니만, 결국 임신하였다는 그 사실에 나는 왜그리 맘이 상하던지..!! 9월에 정상적으로 출산을 했다면, 이미 3월에는 임신 사실을 알았는데도 말이다. 나를 이용당했다는 그 생각이 들어 힘들었다. 나는 맘은 상했지만,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참고 인내하며 기숙사에서 남은 시간을 성실히 일했다. 


 내가 참고 견디고 있던 그 사이에 나의 도움을 요청하는 선교사님이 계셨다. 그분은 호주에 있는 원주민들(Aborigine)을 위해 원주민들 사이에 구전되어 오는 가락에 찬양가사를 붙여 악보화하는 작업에 내가 함께 하기를 원하셨고, 나 역시 사역을 놓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 일을 내게 허락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과 함께 4개월간 단기 선교 길에 올랐다. 처음으로 떠나는 긴 외국여행이었다. 가족과 내가 자라온 문화를 다 버리고, 마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갔던 아브라함처럼..! 그런데, 4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고 마음이 아팠다. 우선 원주민 세계에서 자행되는 문란한 성문화, 그들은 자신이 맘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혼외정사도 서슴치 않으며 배다른 형제들(어머니가 여럿인 경우)도 낳아서 살아갔다. 정부에서 2주마다 나오는 생활비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데, 그들을 상대로 마약을 팔아서 마약을 먹고 눈이 풀려있는 원주민들은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신 하나님닮은 사람의 형상보다는 짐승의 모습에 흡사하였다. 먹고 마시고, 자고 배설하고 그들의 육신적인 필요만을 충족하며,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별반 다를 바 없는 그런 반복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이 땅 가운데 허락하셔서 보내는 것이라고 믿으며 신앙 생활 했는데, 결국 남자와 여자가 자신의 생리적 욕구를 해소하고서도 얻을 수 있다는 그 사실은 내게 큰 상실감과 허무감을 가져다 주었다. 사람이 이렇게 태어나서, 저렇게 살다가 수명이 다해서 죽는다는 것이 너무나 비참하고 아팠다. 4개월의 단기선교사역을 마친 뒤,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이전과는 달라졌다. 사회를 보는 시각도 긍정적인 시각보다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뀌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되도록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이웃을 위해 배려했는데, 단기선교 사역 후에는 이기적이고 본능적인 모습의 내 욕구를 다 보이며 부정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삶에 대해서 열정적이고 순수했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부정적이고 악한 모습의 내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겉모양으로 잘하려고 했던 그 무거웠던 스트레스, 이중적인 내 자아의 모습이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이 발견되어지는데 나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수많은 사람을 향한 정죄가 쏟아졌고, 결국 그것은 나를 향해 찌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유한하고 소중한 삶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고 싶었던 그 순간에 삶의 방향을 돌려 지나왔던 한 해 한 해 되짚어보며 나의 삶을 반추해나가기 시작했다. 이 사건 이후, 매일 느끼던 혼란에 대해서 누구한데 믿고 털어놓을까 고민했다. 뭘봐도 심드렁한 마음이 그물에 걸린 고기마냥 무기력하게 갇혀지내게 만들었다. 어디서부터 이런 상한 감정과 상처가 기인되었는지를 살펴보던 가운데 아픔으로 눈물로 기도하며 금식하며 하나님과 독대의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 제가 이런 상황일 때에 보셨습니까? 제 이름은 아세요? 저를 정말 붙드셨습니까? 왜 홀로 놔두셨습니까? 내가 고통당할 때, 내가 외로울 때에, 내가 짐지고 갈 때에 왜 하나님 저를 혼자 두셨습니까?’라는 고통의 절규와 피맺힌 원한이 하나님을 향해 나갔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때에도 계속 하나님 앞에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피조물인 나는 창조주인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며 물었다는 것이다. 한참을 하나님 앞에 눈물로 항변하는데, 성령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으로 나를 만지시기 시작했다. 다윗이 지은 시편 말씀으로 내 영을 소생케하셨는데...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라는 시편 32편 3절말씀이 내 영적 상태를 그대로 말한 말씀이었다. 하나님 앞에 정직히 직고하여야 되겠구나. 원망하고 따지는 말투가 아닌, 정한 마음으로 아뢰어야겠다는 다짐이 섰다. 정하다라는 말은 정직하다, 바르다, 깨끗하다라는 뜻인데, 이런 마음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내면에 일고 있는 불신과, 원망과 눈물과 우울한 감정들을 하나님 앞에 낱낱이 토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뒤에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좇아 피아노학원에 강사로 아이들 레슨을 하러 나가게 되었다. 출근하면서 기도하였다. ‘하나님, 내 속에 정직한 영을 부으사 새롭게 빚으시고, 내 상한 마음 고쳐주소서. 지금과 같은 죄 된 마음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새 날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제가 억울한 것을 하나님이 보고 계시고 아신다면 그 증거를 보여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하루 하루를 나무 심는 마음으로 살았다. 감사의 제목을 달아가면서..! 지금까지 그리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임을 고백하고 높여드리면서..!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갈 때에, 놀랍고 기막힌 일이 있었다. 내가 지도하던 한 아이가, 너무나 나를 잘 따르고 수업에 잘 참여하였다. 눈빛도 밝고 맑은 아이였는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학원을 다니면서 레슨비를 제대로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당시 원장으로 있던 것이 아니라, 원장님께 보고를 드려야하는 강사 선생으로 학원에 근무하였기에,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참 애매했다. 아이에게 괜히 레슨비를 제 때 내라고 독려할 경우 아이가 받을 상처가 생각나서 머뭇거렸다. 그래서 원장님께 선처를 요구하려고 말을 꺼내려 할 때에, 원장님이 지난 1년여의 일을 말씀해주셨다. 그 원장님은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재능기부도 하셨고, 상황의 여의치 않는 이들에게는 무료수준에 준한 레슨비를 받고 레슨도 하면서 피아노학원을 운영하셨었는데, 굳이 그 아이의 레슨비를 받으려고 하는 그 모습이 의아했다. 자세히 알고보니 집안 형편이 되시는데도 굳이 계속 밀려가면서 아이를 보내고, 백화점이든 값비싼 쇼핑을 할 때마다 그 어머님을 뵙는데, 약이 오른다는 말을 하셨다. 본인 쓸 것은 다 쓰면서 학원에 내야하는 공적인 비용은 지불하지 않는 프리라이더(free-rider)같은 사고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중간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싶은 마음에, 어머님께는 원장님의 말씀과 학원의 사정을 정중히 아뢰며 레슨비를 독려하였고, 아이에게는 상처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레슨에 임했다. 그랬더니, 그 아이는 내게 충성스러운 제자가 되었다. 눈빛으로 화답하여주고 마음으로 신뢰하며 잘 따라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 학원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다른 학원으로 이동하게 되었을 때에, 그 아이는 나의 연락처를 물으며 지금까지 저장된 휴대폰 개인사진을 갖고 싶다고 말을 했고, 그 당시 휴대폰 사진은 인화는 할 수 없고 대신 개인 홈피를 통해서 복사하여 소장할 수 있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 즉시, 그 아이는 온라인 상의 홈피계정을 만들어 그곳에서 나와 소통하였다. 처음 정을 주었던 선생님이었는지, 그 아이는 늘 내 홈페이지에 들어와 자신의 일기를 남겼다. 하루 하루 일을 나누고, 지난 사제간의 정을 그리워하며 나를 따랐다. 하지만, 내가 그 정을 계속 이어가다가는 그 아이는 새 선생님과 적응하지 않고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듯 하여, 나는 잠시 외면하고 읽던 책 접어놓듯 그 아이와의 관계를 접어두었다. 시간을 두고 그 아이와 집안을 위해 중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5월 가정의 달이 되자, 내 심령가운데 그 아이의 상황이 생각나며, 나를 그토록 따르고 좋아했던 것이 떠올라 아이에게 안부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어린 시절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웃 어르신들의 말씀을 듣고 그리워했던 그러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 떠올라, 나 또한 그 아이에게 그런 사랑을 받고 있음에 무시한 것은 아닌가 싶어 어린이날을 앞두고, 조심스레 아이의 홈페이지를 들러 안부를 전하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몇 년전 나에게 자궁에 혹이 생겼다고 말하고 임신하여 2학기 내내 육아휴직하며 내 마음을 불편케했던 그 여사감의 사진이 그 아이의 홈페이지에 있는 것이다. 순간 마음이 떨리고 내 상한 감정이 복받쳐 오르면서, 그 동안 내가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가 떠올랐고, 그에 대한 명확한 응답이 왔음을 알아차려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어찌 된 일인가? 원비가 밀려 힘들게 사는 그 아이와, 그 여사감은 도대체 무슨 관계이기에 이렇게 연결되어있단 말인가? 한순간 내 맘속에서 일렁이는 여러 생각들의 충돌과 혼란 속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반문과 함께 내 마음을 요동케 했다. 잠시 기도로 사실을 직고하면서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홈페이지를 열어서 그 아이에게 글을 남기고 있었는데, 글을 남기는 중 홈페이지에 남긴 글들을 통해 그 아이와 그 사감은 고모와 조카의 관계임을 알았다. 그 둘은 사는 곳도 너무 달랐고(한 사람은 충남 당진, 한 사람은 경기도 수원) 일부러 캐내지 않는 한 나의 삶과 그렇게 얽히고 섥혀 있을리 만무했다. 그동안 기도하며 애통하며 맘상했던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고 복받쳐 오르며, 하나님께서 나의 생각과 삶을 모두 다 감찰하고 계셨다는 사실에 부끄럽고 감사하고, 미안하고 또 감격하며 그 날 나는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이 공간에서 우연한 행위란 없다는 것!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지어져가고 있다는 것! 바람과 산들바람을 떼어놓을 수 없듯이 한 사람의 인생을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웃이기 때문이다. 바라건데, 우리가 서로에게 선한 이웃이기를 바란다.


 인터넷 중독이 모든 음란물과 나쁜 일들의 보급로가 되고 있으며, 게임중독에 빠진 청소년들은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1탄이 깨지면, 다시 시작해도 되는 식의 사고가 팽배해 져서 쉽게 충동조절을 못하고 자라게 된다. 10년 후, 20년 후 사회를 지탱해가는 보이지 않는 미래들이 망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예고도 이유도 없이 닥치는 ‘묻지마 범죄’가 증가하고, 각종 성범죄의 무차별 공격, 평생 고통을 씻을 수 없는 무기한 살인인 아동 성범죄의 증가에 따른 우리들의 판단력 자체가 흐려졌다. 판단력이란 어떤 상황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인간의 직관적인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판단력은 창조적인 능력이다. 때론, 인간의 판단력은 그가 속해 있는 사회, 즉 그 사회 구성원이 원하는 것과는 모순되는 행동을 하도록 그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나는 오랜 기다림의 세월을 보내며, 인내심을 훈련받았다. 뭔가를 해치고 싶은 욕망(나를 속이고 기만했다)의 사슬이 끊겼고 억울하고 답답했던 부분이 풀렸으며, 주기도문이 외워지기 시작했다. 가슴에서 망치질을 해대듯 거친 숨소리도 잔잔해졌다. 희생을 하고, 그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만 계속 생각하는 것은 내 잘못이다. 희생이 또한 우리의 삶의 일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희생은 후회할 것이 아니라, 열망을 가질 만한 것이다. 때로 소중한 것을 희생하면, 사실은 그걸 잃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넘겨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깨달음과 함께 가슴이 저려온다. 결국 나는 자기 자신과 평온해지면 모든게 평온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노를 품고 있는 것은 독이다. 그것은 안에서 당신을 잡아먹는다. 흔히 분노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공격하는 무기처럼 생각되지만 증오는 굽은 칼날과 같다. 미움은 칼잡이 없는 칼과 같아서, 그것을 잡고 있는 사람에게도 피를 흘리게 하고 생채기를 낸다. 그 칼을 오랫동안 잡고서 상대에게 휘두르면 상대에게 가기 전에 우리 자신이 먼저 다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피차 용서해야 한다. 우리 자아가 죽으면 영혼은 그 분노에서 해방된다. 이 일을 통해서 모든 삶이 서로 엮여 있다는 걸 영혼 깊이 느꼈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면 기도한다는 진리를 알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전통이 붕괴되고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유일한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는 대신에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보편적인 가치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적 없음과 공허감, 즉 실존적 공허라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내면 그 사람은 최악의 상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외면하지 말고 주변에 손내미는 영혼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우리 각자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심을 느끼고 알고 있다면, 정말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는다면!!! 우리는 썩어져가는 이 땅가운데 하나의 밀알, 소금과 빛의 사명을 잊어서는 안된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라는 글을 쓴 작가 미치앨봄의 말에 감동되는 구절이 있어서 남겨본다. 우리에게 낭비된 인생이란 없다. 우리가 낭비하는 시간이란 외롭다고 생각하며 보내는 시간 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타인이란 남이 아니라, 아직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일 뿐이다. 가족과 같은 사랑으로 이 땅에 만나는 영혼들에게 다가간다면 악을 악으로 갚는 복수의 고리는 없을 것이다. 먼저 선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데에 일익을 담당해보자. 처음부터 청결하게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악에게 유혹을 받고 시험을 받았지만, 악에게 지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지켜 그 악을 극복한 사람이 바로 청결한 사람이다!! 절대적 의미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완전한 실패를 영웅적인 승리로 바꾼다. - 죽용의 수용소 삶의 의미를 찾아서를 쓴 빅터 프랭클의 말이다. 이 말을 잊지 않으며, 썩어져가고 패역한 이 땅가운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생명을 보호하고 이어가야할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 영원에서 영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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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기타 [협회 제7회 생명윤리 활동 수기 수상작- 대상] "생명살리기 캠페인을 통해 배운 생명의 소중함" (2012. 10.) 이현지 2016.01.07 1212
63 기타 [협회 제7회 생명윤리 활동 수기 수상작- 우수상] "생명이라는 아주 소중한 부담감" (2012. 10.) 문한나 2016.01.07 1310
기타 [협회 제7회 생명윤리 활동 수기 수상작- 특별상]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 우리의 삶" (2012. 10.) 김미숙 2016.01.07 1291
61 기타 [협회 제7회 생명윤리 활동 수기 수상작- 특별상] "생명윤리에 관한 활동수기" (2012. 10.) 송관석 2016.01.07 1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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