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가장 아름다운 만남을 도우며
김미숙
(피아노 학원 원장, 사랑의 교회)
2013. 10.
하나님께서 친히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사, 흙으로 빚은 육신이 생령 곧 생명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에, 나는 ‘생명’이라는 단어에 경외감이 들기 시작했다.‘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의 이 말씀은 나를 지으시고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도록 보호하시고 안위하셔서 생명있는 삶으로 인도하셨다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와 나를 생명지킴 운동을 해나가는 기도자로 만들었다. 세상의 매스컴에서는 끔찍하고 잔인한 사건들의 보도가 연일 퍼져나가며, 최후 심판자이신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이 없는 듯한 그런 일들이 벌어짐을 떠들어댄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길어야 백년도 안되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께서 호흡을 거두시면 그 분 앞에 선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의 삶을 내 맘과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으시고 만드시며 호흡을 불어넣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드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숨을 쉬고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께서,‘애야~ 집에 오너라! 이제 시간이 되었다. 네 일은 끝났다’라고 하시면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야한다. 내가 태어났던 시간과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듯, 나의 죽음의 때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더 간절히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아드리기 위해서는 나의 미래의 죽음을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늘 깨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었는데, 작년 이 맘 때에, 어떤 사모님으로부터 호스피스 사역을 권유받았고, 3개월의 기도 끝에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올해에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훈련을 시작하였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남은 여생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하도록 환자와 그 가족을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도우며, 사별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경감시키기 위한 총체적인 돌봄을 하는 사역이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은 죽음과 생의 마감에 동행자가 되는 것으로 어쩌면 봉사로서 기피의 대상이거나 어렵고 힘든 부분 중에 하나일 것이지만, 죽음 앞에 선 이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명자로 가장 아름다운 만남(死후,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다리가 되는 귀한 사역이다. 하나님은 치료하시고, 우리는 봉사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가장 아름다운 만남을 이루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이러한 봉사자들도 본인의 죽음 앞에서는 초연해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어떤 형태의 죽음이든 인간의 유한성의 아쉬움과 슬픔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인간에게 절대고독을 가져다주어, 두려움에 휩싸이게도 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을 더 연약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죽음은 생명을 가진 모든 피조물들의 숙명이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때로는 친척들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심지어 결혼을 하여, 원가족에서 분리되어 독립하였을 때에도 자녀를 낳아 부모가 되기까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아이들을 기르기는 정말 힘들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삶의 종착역인 죽음의 순간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혼자 떠나야 하는 길이지만, 지금까지 서로 기대면서 함께 더불어 살아왔듯이 죽음의 순간에도 나를 지켜보아주고 동행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죽음을 앞두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는 동안 나는 그들이 몸과 마음으로 전하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누구보다도 인생의 여정이 크게 바뀐 사람은 바로 나이다. 진정한 나를 찾고,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자 내면적으로 깊이 파 들어간 시간이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유한한 틀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 안에서 삶을 형성한다. 그 시간 속에서 살아가면서 시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그 속에서 인생을 배우게 된다. 대부분 지금 여기에서 정해진 시간을 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영원이라는 시간과 연결된 삶을 산다. 언젠가 맞이해야만 하는 내 인생의 마지막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내 인생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며, 내 삶의 짐들을 내려놓고 나그네와 같은 순례자의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하였다. 내가 속한 호스피스 관련 단체는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에 위치한 수원기독호스피스회이다. 매주 화요일에 자원봉사자 훈련이 있으며, 봉사자들은 10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심화교육(가정기초간호와 노인간호과정) 22시간과 임상교육(실습봉사교육) 12주간 30시간을 봉사하고 호스피스 훈련과정을 수료하면 수원시 의료기관인 각 병원으로 파송되어 임종을 앞둔 환우들을 돌보게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갔을 때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어떤 식으로 믿음의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세 가지 죽음의 진실과 마주쳐야 한다. 첫 번째,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고 그렇게 될 운명이요. 변경할 수 없는 약속이다. 두 번째, 죽음은 이 세상의 삶에는 끝이겠지만 존재의 끝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은 죽음은 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그러기에 죽음에 임박한 환우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는 일은 가장 중요하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의 구호가 있다. 바로! ‘가장 아름다운 만남을 위하여!’라는 구호이다. 인간과의 관계는 이제 끝이 났고, 하나님과의 만남만이 남은 말기암환자들에게 천국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믿음을 주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세족식을 하고 병상세례도 집례 되어진다.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서 구원을 받게 하는 그 순간은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세 번째, 죽음은 사람의 인격의 됨됨이를 결정한다. 그 인생이 죽음 앞에서 진실이 다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 앞에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코람데오). 이 세상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니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나그네요. 거류자요, 순례자인 것이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신의 뜻대로 될 것처럼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순간 죽음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당황할 수밖에 없다. 못다 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 삶에 대한 미련이 너무 남아서 발버둥 치는 모습은 서글프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에서는 항상 교육 전에 선배봉사자들의 호스피스 소감문 발표가 이뤄진다. 최소 5년 이상을 호스피스로 봉사하신 분들이 그간의 경험과 간증들을 발표하고, 후배 호스피스 봉사자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귀한 시간이다. 어떤 사모님께서 후배 봉사자들에게 몇 가지 당부사항을 해주셨는데, 첫 번째가 말조심하라는 것이다. 10년 전 사모님께서 호스피스로 부르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봉사하러갔다가 따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아버지같으신 폐암말기암 환자이신 남자 분을 극진히 간호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이 되어 “따님이 참 효녀시네요. 이렇게 극진히 아버지를 모시고...”라고 한마디 했었는데, 실제 관계를 알고보니 환자와 간호자는 부부지간이었다. 남편은 수차례 항암으로 인해 탈모가 심했고, 쇠약해진 육신으로 인해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보이는 형색이었고, 따님 같은 부인은 그런 남편과는 상대적으로 젊게 보였던 것이다. 또한 섣부른 위로의 말이 말기암으로 고통받는 환우에게는 비수가 되어,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는 경고였다. 사모님은 위로의 언어로, 환우에게 ‘사람이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면서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관하신다’는 뉘앙스의 말을 건낸 것이, 말기암으로 고통받는 환우에게는 죽음을 앞둔 긴박감속에서 큰 상처가 되어... “그래요. 전 이제 죽어요. 가는 순서가 없어서, 이제 죽어요!”라는 항변으로 돌아왔고... 엎지러진 물과 같은 한 마디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 환우에게 박혀버렸다.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다음 환우들을 위해 준비하는 호스비스 자원봉사자 교육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안내했다. 살면서 말로써 생긴 오해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의 양상이지만, 삶의 마감의 자리에 있는 환우들에게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언어였다. 그래서, 무엇보다 환우들을 돌보면서 침묵을 강조했다. 무심코 말을 뱉어내지 말라는 것을 신신당부하셨다. 환자들의 발을 만져주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듯이 발마사지를 해주시는 집사님이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순종함으로 그 자리에서 환우들의 발을 만지며 마사지를 하지만, 생명이 꺼져가는 그 발은 온기가 적고 뻣뻣하여 힘들기도 하다며 실제 봉사시에 상황 설명을 하셨고, 어느 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셨다. 그 날은, 환우들이 많이 대기하고 있어서 손이 바빴다고 하셨다. 한분 한분 정성껏 환우들 발마사지를 하셨지만, 사람의 체력이 유한한 것이라, 마지막 환자를 다 하지 못하시고 내일 와서 처음으로 발 마사지를 해주겠노라 했었는데, 다음날 와보니 그 날 저녁에 그 환우는 소천하셔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전하셨다. 그래서 그 날 집으로 돌아와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그분의 눈동자가 떠올라, 눈물로 후회하며, 시를 하나 지으셨는데... 그 제목이 이러하다. ‘나의 오늘이 당신의 마지막이었음을...’ 오늘 내게 주어진 새로운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며 살 필요가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2012년 타계한 폴란드의 여류시인 비스와봐 쉼보르스카는 삶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없이 죽는다.
사랑이나 미움이나 지내놓고 보면 모두가 후회스럽고도 또 왜 그리워지는지! 삶의 마지막에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결론은 한결같다. 사랑하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지금 바로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내 손이 닿는 이웃과 친구에게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며 손잡아 따스한 체온을 나누는 사랑의 실천에 보다 힘쓰고 싶다. 나는 호스피스 사역을 하면서 모든 죽음이 외롭고 쓸쓸하고 절망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분명 슬픈 일이다. 하지만, 남아있는 이들에게 슬픔 이상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떠난 분들도 보았다. 때로는 감동적이고, 때로는 아름답기까지 한 이별의 순간을 만들어 내는 힘은 무엇일까? 나는 그 힘이 바로 집착을 버리는 점에서 비롯된다고 믿고 있다. 슬픔과 고통을 만드는 것은 생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다. 나는 오늘도 환우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은 언제 어느 때나 죽음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으로써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또한, 많은 환우들이 말하는 주변의 가깝고 사소한 사랑이 곧 삶을 아름답게 사는 것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어제와 동일한 반복된 하루는 없으며 늘 새 문을 열어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며‘가장 아름다운 만남’을 위해 다리놓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끝으로 성 어거스틴의 아름다운 글귀로 나의 글을 마치고자한다. 추상적인 사랑의 생김을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으로 묘사한 글이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며... 생명을 주신 아버지께서 나를 사용하심에 감사드린다. 사랑은 어떻게 생겼나? 사랑은 타인을 도와주는 손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에게 달려가는 발 고통과 필요를 볼 수 있는 눈 그리고 탄식과 비통을 듣는 귀가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생김새다. -성 어거스틴- |